언제 한번쯤 이야기 해보고 싶었던 내용이었는데, 메타 사이트에서 한국 무협의 발전에 관한 글이 올라왔기에 지금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받았던 용돈을 모아 무협소설을 사 읽는 것으로 무협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때 산 책이 아마 김용의 대작 '영웅문 시리즈 중 사조 영웅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후, 무협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나는 여러 작가의 수많은 무협을 접하길 원했고 찾아다녔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로 한국 무협, 그때는 무협지(武俠誌)였다.
중국의 대하소설을 먼저 접했던 나로서는 한국 무협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때 당시의 기분을 되살려보면, 그건 무협이 아니라 판타지나 환상소설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무협이면서도 내가 알고 있는 무협과는 다른 느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차분히 생각해보니,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主題)를 느꼈던 까닭일 것이다.
강호에서 살아가는 무인의 삶과 그 무인들과 부대끼는 강호인의 삶을 느끼고 그리다가 강호라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분출시키고 만족하게끔 쓰여진 글을 보았을 때 느끼는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모 사이트에서 이름난 무협작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무협지라는 헌 옷을 벗어던지고 무협소설이라는 새 옷을 갈아입었다. 무협지에서는 값싸보이고 심심풀이 삼아 보던 책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크게 성공할 수 없다 하여 문학의 한 종류인 장르소설로 승격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더 많은 장르소설 작가가 나올 수 있도록 여러가지 시도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왜 사람들은 예전에 느꼈던 무협의 향취를 또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일까?
지금도 많은 무협작가가 무협을 이야기한다고는 하나, 그 안에는 문학이 없다.
문학의 한 종류인 장르소설로 승격했을지는 몰라도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협에는 문학이 빠져 있다. 우리가 바라고 느끼고자 하는 무협의 향취는 무인의 삶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가공하여 되새기고 음미할 수록 달라지는 그 묘한 맛이라 할 수 있는데 문학의 부재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첩첩산중을 꾸불꾸불 돌아가는 장황한 스토리뿐이다.
무협 속에서 살아가는 강호인의 삶을 통해 무협이 독자에게 가져다 주는 매력을 느끼고자 함인데, 주인공이 힘을 가지게 되는 과정과 그 커다란, 누구도 쉽게 거역할 수 없는 그 힘으로 강호를 마음대로 조물딱거리는 지를 보여주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한국의 무협소설이다. 이제는 그러한 것이 너무나 보편화되어 일부 무협독자는 무협이 가져다 주는 매력마져 느낄 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니, 일부 양산화된 무협소설로 무협을 알게 된 독자는 그러한 매력이 있는지조차 모르며 지금의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한 수단으로 무협을 찾고 있다.
또한 그 안에는 수많은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권력자의 행패에 맞서싸우는 주인공이 결말에 해내는 성과가 겨우 새로운 권력자가 되는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대부분의 결론이 힘있는 자에겐 힘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힘을 추구하는 사고가 무협을 읽는 독자에게 주는 파장이 얼마나 클 지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성에는 무협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보다 한국 무협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무협이 가지는 시대적 배경에 있다. 중국에서는 무협소설이 무협소설이라는 이름보다 장편소설 혹은, 대하소설로 인식되고 있다. 그 말은, 자기네 땅에서 자신의 조상들이 지내왔던 삶이었기에 보다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무협은 중국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써내야 한다. 소설에는 시대상이 포함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삶이 작가를 통해 소설로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무협작가는 한국적인 사상과 사고와 시대를 중국 지형에 맞게 수정하여야 한다. 필력이 높은 작가들이 고심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무협은 아직 한국 무협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온전한 우리의 삶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들의 힘으로 한국인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한국인의 정서와 사상 그리고 삶을 담아낼 수 있을 때 한국 무협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무협(武俠)의 뜻을 져버린 무협은 우리에게 아무런 힘도 미칠 수 없다(無力).
내가 그리워하고 꿈꾸는 무협은 무협의 진정한 뜻을 져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느껴진다.
한국 무협에서도 그러한 무협의 향취가 느껴지는 무협을 맛볼 날이 있기를 바란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받았던 용돈을 모아 무협소설을 사 읽는 것으로 무협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때 산 책이 아마 김용의 대작 '영웅문 시리즈 중 사조 영웅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후, 무협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나는 여러 작가의 수많은 무협을 접하길 원했고 찾아다녔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로 한국 무협, 그때는 무협지(武俠誌)였다.
중국의 대하소설을 먼저 접했던 나로서는 한국 무협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때 당시의 기분을 되살려보면, 그건 무협이 아니라 판타지나 환상소설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무협이면서도 내가 알고 있는 무협과는 다른 느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차분히 생각해보니,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主題)를 느꼈던 까닭일 것이다.
삶은 없고 욕망의 분출만 있다.
강호에서 살아가는 무인의 삶과 그 무인들과 부대끼는 강호인의 삶을 느끼고 그리다가 강호라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분출시키고 만족하게끔 쓰여진 글을 보았을 때 느끼는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모 사이트에서 이름난 무협작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무협지라는 헌 옷을 벗어던지고 무협소설이라는 새 옷을 갈아입었다. 무협지에서는 값싸보이고 심심풀이 삼아 보던 책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크게 성공할 수 없다 하여 문학의 한 종류인 장르소설로 승격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더 많은 장르소설 작가가 나올 수 있도록 여러가지 시도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왜 사람들은 예전에 느꼈던 무협의 향취를 또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일까?
지금도 많은 무협작가가 무협을 이야기한다고는 하나, 그 안에는 문학이 없다.
문학의 한 종류인 장르소설로 승격했을지는 몰라도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협에는 문학이 빠져 있다. 우리가 바라고 느끼고자 하는 무협의 향취는 무인의 삶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가공하여 되새기고 음미할 수록 달라지는 그 묘한 맛이라 할 수 있는데 문학의 부재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첩첩산중을 꾸불꾸불 돌아가는 장황한 스토리뿐이다.
무협 속에서 살아가는 강호인의 삶을 통해 무협이 독자에게 가져다 주는 매력을 느끼고자 함인데, 주인공이 힘을 가지게 되는 과정과 그 커다란, 누구도 쉽게 거역할 수 없는 그 힘으로 강호를 마음대로 조물딱거리는 지를 보여주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한국의 무협소설이다. 이제는 그러한 것이 너무나 보편화되어 일부 무협독자는 무협이 가져다 주는 매력마져 느낄 수 없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니, 일부 양산화된 무협소설로 무협을 알게 된 독자는 그러한 매력이 있는지조차 모르며 지금의 대리만족을 느끼기 위한 수단으로 무협을 찾고 있다.
또한 그 안에는 수많은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권력자의 행패에 맞서싸우는 주인공이 결말에 해내는 성과가 겨우 새로운 권력자가 되는 것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대부분의 결론이 힘있는 자에겐 힘으로 상대해야 한다는 힘을 추구하는 사고가 무협을 읽는 독자에게 주는 파장이 얼마나 클 지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성에는 무협의 영향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보다 한국 무협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무협이 가지는 시대적 배경에 있다. 중국에서는 무협소설이 무협소설이라는 이름보다 장편소설 혹은, 대하소설로 인식되고 있다. 그 말은, 자기네 땅에서 자신의 조상들이 지내왔던 삶이었기에 보다 쉽게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무협은 중국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써내야 한다. 소설에는 시대상이 포함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삶이 작가를 통해 소설로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의 무협작가는 한국적인 사상과 사고와 시대를 중국 지형에 맞게 수정하여야 한다. 필력이 높은 작가들이 고심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무협은 아직 한국 무협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온전한 우리의 삶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들의 힘으로 한국인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한국인의 정서와 사상 그리고 삶을 담아낼 수 있을 때 한국 무협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무협(武俠)의 뜻을 져버린 무협은 우리에게 아무런 힘도 미칠 수 없다(無力).
내가 그리워하고 꿈꾸는 무협은 무협의 진정한 뜻을 져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느껴진다.
한국 무협에서도 그러한 무협의 향취가 느껴지는 무협을 맛볼 날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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